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성(李達成)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49430
  • 전몰일자 : 19510517

공훈사항

이달성 일병은 충청북도 보은군 회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1년 2월 1일 입대하여, 경상남도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공병대로 배치되었다.
이달성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저지하고 3월 3일부로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3월 5일에는 횡성 일대의 운교리-안흥리 지역으로 진출했다.
이어서 사단은 3월 7일 좌측 전방 제36연대가 봉복산(1,028고지)을, 우측 전방 제35연대가 태기산(1,261고지)을 목표로 공격하여 3월 14일에 적의 최후 거점인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위치한 태기산을 점령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신대리-백운동을 잇는 선으로 진출한 후, 다음날 북쪽의 운무산-흥정산을 잇는 선에서 최종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4월 초순까지 부대정비와 위력수색에 주력했다.
이달성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4월 9일 소양강 도하작전을 감행하면서 다음날 공격을 개시하여 4월 19일에 목표인 인제 지역을 점령하고, 그 북방 봉화봉과 월하리 일대로 진출하여 캔자스선을 점령했다. 그러나 사단은 4월 24일 전선조정으로 인제를 적에게 넘겨주었지만 다음날 오전에 인제를 공격하여 재탈환했다. 그 후 사단은 5월 7일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공격하여 논리 북쪽의 인제군 매봉-상수내리를 잇는 선의 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5월 16일부터 공격(일명 5월 공세)을 시작했다. 중공군 제12군은 5월 16일 오후 4시 30분 공격준비사격에 이어서 오후 5시 30분이 되자 춘천 지역 내평리 일대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이 전투에서 사단은 부대가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포위망을 탈출, 재집결 후 새로운 진지를 점령하는 형태로 계속해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렀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사단은 5월 20일 홍천 부근 풍암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달성 일병은 중공군 5월 공세 시 홍천 북쪽에서 방어 중 분대원과 함께 전방연대의 장애물 설치를 지원하다가 5월 17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성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6판-8면-15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ㅇ-09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