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성(李達成)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67425
  • 전몰일자 : 19510118

공훈사항

이달성 일병은 경기도 부천군 소사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한·중 국경선 부근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기 시작하자,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 8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중공군의 2차 공세에 밀려 남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후퇴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12월 3일 승호리 일대로, 6일 신계를 거쳐 시변리로 철수했고, 계속해서 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38도선으로 철수한 미 제8군은 김포반도-임진강-화천-양양을 연하는 선을 주저항선으로 선정한 후 포천-김화 도로를 중심으로 중서부전선은 미군에, 동부전선은 국군에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한편 육군본부는 12월 15일을 기해 국군 제3사단의 방어 종심을 보강하고, 유사시 증원부대로 운용하기 위해 홍천에서 정비 중인 국군 제7사단을 춘천으로 이동시켜 육군 예비로 확보했다.
이후 사단은 춘천 부근의 38도선 일대에 진지를 편성하고 방어준비에 매진했다. 이 일병과 대대 장병들은 춘성군 오항리 일대에 투입되어 진지공사와 더불어 철조망과 지뢰 매설을 하고, 주요 교량에 대한 폭발물 설치 작업 등을 했다.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사단은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사단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하고, 제2군단이 경북 안동까지 종심 깊게 침투함에 따라 사단은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이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면서 일대에 침투한 북한군 제9, 제31사단 침투부대를 격멸하기 위한 수색정찰을 실시했다. 이 일병은 1월 18일 공병 대대원과 함께 실시한 수색작전 중에 적의 기습사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성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1-ㅋ-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