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석(李達石)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1660
  • 전몰일자 : 19501024

공훈사항

이달석 중위는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후퇴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을 때인 1950년 8월 중순, 부산 동래에 설치된 육군종합학교로 입교하여 단기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8월 24일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달석 중위는 전선에 배치되어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1950년 8월 29일까지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제2군단(제3, 제13, 제15사단)을 투입하여 대구로 집중하였으나 이 중위와 사단 병력이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저지 사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그들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친 북한군은 현풍-왜관-328고지-수암산-유학산-신주막 선에서 저지되었다.
이달석 중위의 진두지휘 아래 사단 병력은 다부동 일대의 정해진 목표를 향해 수차례 공방전을 전개하였고, 연일 반복되는 공방전에서 매일 평균 600여명의 손실이 발생하여 병력이 날로 감소하였다. 이 중위와 사단 병력은 가산을 탈환하고자 9월 중순까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거듭하면서 방어선을 지켜냈다.
이후 이 중위가 소속된 제1사단은 신계를 점령한 후 신계 서쪽 2km 지점인 삼거리로부터 신계-수안 도로를 따라 진격 중이었다. 이 중위와 장병들은 10월 15일 일몰 직전까지 약 30km를 진격하여 수안 남쪽 하유리까지 진출하였으며 17일에는 평양 동남쪽 26km 지점 상원-율리 선을 점령하였다.
이달석 중위와 장병들은 통일된 조국을 꿈꾸며 임진강-토산-신계-수안-상원 방향으로 진격을 계속하였고, 10월 19일에는 사단과 함께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 중위와 사단 장병들은 충전된 사기로 순천을 경유 22일에는 개천에 도착하였으며 23일에는 안주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이 중위와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이달석 중위는 소대장으로서 선두에서 소대원을 지휘하며 용감히 싸우다가 전투 중 적의 총탄에 맞아 1950년 10월 24일 영변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석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47판-5면-26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ㅌ-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