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상(李達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169977
  • 전몰일자 : 19520613

공훈사항

이달상 일등중사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부근에 공산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3월 중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달상 일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5월 하순, 제6사단은 중공군의 4월 및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화천저수지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이후 6월 중순에는 백암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을 주저항진지로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진지보강과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하자, 유엔군사령관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군사적 압박을 가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제6사단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고 중공군의 공세역량을 제거하기 위해 금성천 분지를 탈취하기로 하고 10월 13일부터 공격을 시작했다. 이달상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사단의 예비로 전방연대를 후속하다가 10월 16일에 전방연대를 초월공격하여 중공군을 격파하고 10월 21일에 목표인 교암산(770고지)를 탈취했다. 이후 연대는 10월 30일에 교암산 방어지역을 미 제24사단에 인계하고 사단 예비가 되었다.
제6사단은 1952년 1월 10일에 부로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부근의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 일부를 인수했다. 3월 29일부로 백전투사령부(4월 5일부로 제2군단으로 개칭)로 배속이 변경되었다. 그는 장병들과 함께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연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달상 일등중사는 제2연대 장병들과 함께 봉화산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이후 쌍방 간에 큰 전투는 없이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상급부대에서 포로교환문제로 교착된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방어진지 전방에 대한 공세활동을 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이에 제2연대는 6월 11일부터 15일까지 방어진지 전방의 무명고지(금성천 동북방 A, B고지)를 공격했다. 그러나 적의 강력한 저항으로 무명고지를 탈취하는 데 실패하고, 전진기지인 575고지로 복귀하여 진지를 강화했다.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6월 13일 전투 시에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상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3315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14묘역-4판-192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ㅊ-02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