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봉(李達鳳)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749061
  • 전몰일자 : 19511117

공훈사항

이달봉 이병은 1928년 11월 20일 전라남도 무안군 금성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섰다. 그는 1951년 9월15일 제3사단에 현지 입대하여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병이 연대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동해안의 제1군단에 배속되어 군단의 후방지역작전 중이었다. 연대는 강원도 양양, 고성 일대에서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수색정찰 작전과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중공군 5월 공세 이후 중공군과 유엔군은 피·아간에 군사작전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휴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51년 7월 10일 최초의 휴전협상이 열렸고, 이후의 전투양상은 휴전협상에서의 설전과 더불어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기 위한 고지쟁탈전으로 진행되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수도사단에 작전지역을 인계한 후, 강원도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연대는 서희령 일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선의 요철을 정리할 목적으로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명령했다.
1,211고지는 가칠봉 북서쪽 약 1km 지점에 있는 고지로서, 제5사단이 1951년 8월 31일부터 10월 14일까지 치열한 공방전 끝에 3번이나 점령하고도 끝까지 고수하지 못했던 고지였다. 이에 사단은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북한군은 제3사단이 탈취한 전진기지를 탈환하기 위해 계속해서 역습을 실시했으나, 사단은 이를 물리치고 고지를 지켜냈다. 이 이병은 진지를 지키며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11월 17일 전투에서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봉 이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1478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35묘역-2판-2151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ㄷ-00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