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룡(이달룡)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4202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달룡 일병은 경상북도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1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이어 제301공병교육대에서 공병 주특기 교육을 받은 후, 제3군단 제1103야전공병단에 배치되었다.
제1103야전공병단은 북진작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50년 11월에 창설되어 제3군단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 일병이 제1103야전공병단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38도선 이북으로 진격하고 있었고, 제1103야전공병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서울-춘천-인제-양양 선 이남의 후방지역에서 잔적 소탕작전을 펼치던 상황이었다.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38도선으로 철수하면서 제3군단은 12월 중순 양평으로 이동하여 제2·5·8사단을 배속받아 최초로 가평-춘천 정면의 전선에 투입되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3차 공세 때 군단은 영월로 철수했고, 이후 군단은 제3·7·9사단으로 영월전투, 홍천전투, 횡성전투를 수행했다.
그리고 제3·7사단으로 반격작전을 개시하여 영월-평창-현리 축선으로 진격하여 4월 중순 화천저수지 남방의 한계리-가리산까지 진출한 후, 중공군 4월 공세를 매봉, 한석산 일대에서 격퇴했다. 군단은 중공군 5월 공세 때 강원 인제군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하진부리 일대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공병단은 육군본부 직할로 후방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1952년 4월 5일 제2군단이 재창설되면서 제1103공병단은 동 군단과 미 제9·10군단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공산군은 1953년 7월에 김화 북방 금성 돌출부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7월 공세’를 펼쳤고, 이곳에 배치된 제2군단은 많은 피해를 입고 현 휴전선 일대로 물러났다. 공병단은 도로와 교량 보수에 주력하면서, 때로는 직접 전투에 투입되어 적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이 일병은 위험을 무릅쓰고 다양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군단 작전에 기여했으나, 중공군 7월 공세 때 장애물을 설치하다 적탄에 맞아 7월 16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룡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27-ㅅ-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