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달기(李達麒)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089
  • 전몰일자 : 19510601

공훈사항

이달기 일병은 경상북도 고령군 봉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1951년 2월 중순 제주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달기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제3차공세(신정공세)에 밀려 1·4후퇴를 단행하여 37도선에서 전력을 가다듬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평창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국군과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31일까지 리퍼작전(Operation Ripper)을 전개했다. 이때 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공격을 전개했고, 연대는 평창군 하진부리, 유천리 일대를 점령하고 계속 공격하여 3월 27일 경강국도 상의 현리-하서림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 선(임진강-연천-화천-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방어선인 한석산을 지켜냈다. 이어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면서 방태산으로 후퇴하여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이후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에 들어갔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하였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달기 일병은 1951년 6월 1일 송계리 일대에서 수색 정찰 활동을 하던 중 정찰대의 기습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달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6-ㅊ-01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전사자 명부에는 소속이 제6연대로 되어 기록되어 있으나, 동 연대는 전쟁 발발 이전에 해체되어 제22연대로 개칭되었으므로 오기로 추정하여 제22연대로 조정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