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능식(이능식)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11959
  • 전몰일자 : 19500717

공훈사항

이능식 대위는 서울시 종로구 청진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1945년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는 조국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군입대를 결심하고, 1948년 5월 초순에 서울 태릉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 제7기로 입교했다. 이곳에서 6개월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48년 11월 11일에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능식 대위가 제1사단 사령부가 위치한 수색(현 서울시 은평구) 및 제1사단의 책임지역인 개성과 임진강 일대에서 38도선의 방어력 증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던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이 대위가 소속된 사단은 임진강 도하 작전에 참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으나 북한군의 공격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은 임진강을 도하 한 후 문산-서울 축선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능식 대위의 진두지휘하에 장병들은 소규모로 분산된 채 파평산 방향으로 철수하면서 저항을 계속하였다. 이어 26일에는 파평산 방어진지의 노출된 동측방으로 접근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해 주저항선이 무너졌다. 이후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사단의 주공이 32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문산리를 위협하였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연대병력은 27일 야음을 이용하여 봉일천 북쪽 위전리-도내리를 연하는 최후저지선까지 결전을 펼치면서 철수하였다.
이 대위의 진두지휘 아래 연대병력은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105mm 곡사포의 지원사격 하에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함으로써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북한군 제15사단은 연전연패가 계속되자 9일 다시 무극리-음성, 신양리-음성 양측방 도로 접근로와 중앙 산간 접근로의 공격을 개시하였다. 새벽 무렵 북한군은 음성에 포격을 집중하면서 2개 연대병력을 각각 8대의 장갑차의 지원하에 연대 정면으로 공격하였으나 이 대위와 연대 장병들의 집중적인 저지사격과 역습에 의해 다시 저지되었다.
이 대위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장병들에게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중대장이었다. 전투 경험이 없는 소대원들을 지휘해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을 방어했던 이능식 대위는 1950년 7월 17일 부평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능식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ㅎ-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