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능수(李能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902151
  • 전몰일자 : 19500807

공훈사항

이능수 일병은 서울시 용산구 도원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1950년 1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 과정을 마친 후 38도선 경계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연대는 다시 원주로 철수하였고 6·25전쟁 직전인 6월 20일에는 수도경비사령부에 배속되어 서빙고로 이동하였다.
이능수 일병은 즉각 38도선 방어전투에 투입되었다.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40여 대의 T-34전차를 투입해 공세를 감행하고 있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의정부를 거쳐 창동 방어선으로 철수하면서 전투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해 국군의 방어선은 오랫동안 지탱되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이능수 일병과 장병들은 주저항선인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의 진지로 철수하여 남하하는 북한군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면서 진지를 사수했다. 그가 소속된 부대는 북한군의 보전협동부대를 저지하였으나 서측으로 우회한 북한군의 위협을 받아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수도사단은 탄약을 재보급받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군 제107전차연대 소속의 전차 수십 대를 앞세운 북한군의 총공격을 받아 소요산 일대의 주저항선이 돌파되기 시작하였고, 10시간에 걸친 혈전에도 불구하고 동두천 방면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군은 6월 27일 저녁 미아리 방어선을 돌파하고, 6월 28일 새벽 서울에 진입하였다. 이능수 일병과 장병들은 소부대 단위로 분산된 채 삼송리를 거쳐 행주로 철수해 한강을 도하 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오류동 일대에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7월 3일 한강방어선이 무너지자 지연전 및 재편성을 병행하며 시흥지구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사단은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으로 철수한 후 8월 1일 야음을 이용하여 낙동강 남안으로 이동하여 3일 야간까지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였다.
이 일병은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능수 일병은 1950년 8월 7일 낙동강방어선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능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2-ㄱ-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