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논용(李論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5307846
  • 전몰일자 : 19500905

공훈사항

이논용 이등중사는 전라북도 전주시 풍남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와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2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논용 이등중사는 문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북한군의 문산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다. 북한군 제3사단은 1950년 7월 4일 새벽 공격을 개시, 금곡리 부근으로 밀어붙이고 풍덕천-수원 도로를 따라 남진하였다. 이에 이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한때 이들을 일제사격으로 격퇴하기도 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해 방어선이 돌파되고 결국 7월 4일 평택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105mm 곡사포의 지원사격하에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해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북한군 제15사단은 9일 다시 무극리-음성, 신양리-음성 양측방 도로 접근로와 중앙 산간 접근로의 3개 방향에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새벽 무렵 북한군은 음성에 포격을 집중하면서 공격해왔으나 그와 장병들의 집중적인 저지사격과 역습에 의해 다시 저지되었다. 이후 8월 초부터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큰 수훈을 세웠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논용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편성에 주력하였다.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가산(902m)은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로써 가산을 탈환하여야 하였다.
이 이등중사는 달려드는 북한군을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방어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최선봉에 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죽는 순간까지 손에서 총을 놓지 않고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논용 이등중사는 1950년 9월 5일 가산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논용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1-ㅊ-05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