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노재(李老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2801
  • 전몰일자 : 19510302

공훈사항

이노재 일병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이어 포병훈련소에서 박격포 주특기훈련을 받고 육군직할 제106중박격포중대에 배치되었다.
4.2인치 중박격포중대는 국본 일반명령 제27호에 의거 1950년 12월 9일 제101중박격포중대가 창설된 이래, 제102·103·105·106·107·108중박격포중대가 연이어 창설되었다. 제103중박격포중대는 제7사단에 배속 운용되었다.
이 일병이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 일대로 철수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7사단은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진지를 구축하며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신정 공세)를 시작했고, 사단은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사단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하고, 제2군단이 경북 안동까지 종심 깊게 침투함에 따라 사단은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사단은 1월 19일 공격을 개시하여 24일 영월을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중공군은 2월 11일 횡성-원주 축선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개시했고, 횡성 동북방 일대에 배치되었던 사단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되면서 평창 일대까지 밀려났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사단은 17~18일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사단은 2월 21일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 3월 6일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전방 연대들을 근접 화력지원하며 진격하다 3월 2일 적의 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제106중박격포중대는 1951년 3월 20일부로 제106포병대로 개칭되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노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5-ㄴ-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