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노영(李魯榮)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61187
  • 전몰일자 : 19510609

공훈사항

이노영 하사는 경상북도 경주군 천상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2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익힌 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노영 하사가 전투에 투입될 당시 북한군은 계속 남진해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고 있었다.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노영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9월 4일 형산강 이남으로 철수한 후 인천상륙작전에 힘입어 16일부터 북쪽으로 추격해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했고, 10일 원산을 점령하였다. 이어 북한군이 11월 말 길주에서 반격해 오자, 그는 12월 14일 흥남으로 철수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17일 묵호항으로 해상 철수하였다.
1951년 1월 이노영 하사와 연대병력은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에서 중공군의 신정 공세에 직면했으나 비교적 접적이 경미하여 38도선 북쪽 진지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1월 10일경에는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고 이어 2월 3일에는 묵호 부근에서 옥계로 진출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연대 정면의 적은 강릉 남쪽의 청량리-아산리 간의 도로변에 견고한 저지진지를 구축하고, 강릉을 사수하고자 함으로써 치열한 격전을 치러야만 하였다.
이노영 하사와 연대병력은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4월 15일 재반격을 개시한 이 하사와 장병들은 한계령-오색리-관모봉을 연하는 선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구축하였으며, 적의 보급 및 병력의 집결지로 판단되는 설악산을 점령하고 가리봉-용대리로 진출하기 위하여 약수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이어 5월 29일 간성 서북쪽 504고지를 공격해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6월 3일부터 향로봉 지구전투를 실시하여 북한군 제13사단을 격퇴하고 940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오직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노영 하사는 1951년 6월 9일 고성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이 쏜 총탄에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노영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7100 육)을 추서하고 유해(30묘역-판-2592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5-ㄴ-00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