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노섭(李魯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43511
  • 전몰일자 : 19510318

공훈사항

이노섭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내당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또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1월경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7도선 일대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평창 일대에서 방어 중인 상황이었다. 국군이 철수하자 유엔군의 후방지역을 교란하기 위해 북한군 제2군단이 부대 간격을 이용하여 중동부 전선으로 침투했다. 제2군단은 제2사단이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일대로, 제9사단과 제27사단이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일대로 각각 침투했다. 그리고 제31사단이 경상북도 영주군 남대리 일대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중동부 내륙으로 침투하는 북한군 제2군단 부대를 저지하기 위해 국군 제3군단은 1951년 1월 초 제7사단을 좌측 부대로 후천(영월 남서쪽 8km)-두평(영월 동쪽 4km)-완택산(916고지) 간에 배치했다. 그리고 제9사단을 우측 부대로 정선-송계리 간에 배치하고, 제3사단을 예비로 경북 춘양에 집결시켰다. 군단은 북한군 제31사단을 저지하기 위해 제3사단을 남대리 방면으로 추진시켜 영월의 제7사단과 함께 남북에서 협공을 펼치게 했다. 사단은 남대리 전투에서 북한군 제31사단을 격멸함으로써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호응하여 원주에서 영월을 거쳐 경상도 내륙으로 침투하려던 북한군 제2전선부대를 차단할 수 있었다.
1951년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때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적의 집중공격으로 진지가 돌파당하고, 전세가 불리해짐에 따라 상급부대 명령에 의거 12일 원주로 철수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31일까지 리퍼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연대는 제3군단에 배속되어 평창군 하진부리, 유천리 일대를 점령하고 계속 공격하여 3월 말 38도선 상의 현리-하림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진격하다 적의 기습을 받아 3월 18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노섭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6-ㅂ-07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