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노석(李魯碩)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820

공훈사항

이노석 경사는 1923년 6월 4일 경남 거창군 남상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8년 3월 20일 경찰에 입문했으며, 전몰 당시 경남경찰국 산청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산청에서 전사했다.
이 경사가 경찰에 입문할 즈음에 제주 4·3사건(1948년)에 따라 나라가 어수선한 가운데 군·경이 합동으로 좌익 게릴라들에 대한 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1949년 11월 30일부터 1950년 2월 28일까지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는데, 이 경사가 소속된 경찰부대는 토벌부대가 실제적인 공세를 취한 제2단계 기간(1949.12.1-12.15)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산청경찰은 군부대가 배치되지 않는 지역의 거점방어, 주요 보급로·시설 경비,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그 후 전선이 남으로 이동하게 되자 지연전을 펼치며 7월 19일 마산에 도달했다. 이후 산청경찰은 경남경찰의 일부로서 8월 말까지 전북경찰과 함께 통영, 함안, 마산에서 낙동강 방어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산청경찰은 9월 28일 경찰관서를 수복하고 치안유지 활동을 강화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의 공비섬멸 작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 지침에 따라 산청경찰은 이 기간에 공비섬멸작전을 수행했다.
1951년 8월 20일 야간 공비 수 명이 산청경찰서를 습격하였다.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다가 공비가 쏜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하고 말았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노석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ㅋ-07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