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녕준(李寧俊)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20808

공훈사항

이녕준 경사는 1922년 1월 10일 전북 남원읍 보절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남원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남원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남원경찰은 전주-남원, 순창-남원, 함양-남원 간 주요 도로 통제와 남원역을 중심으로 한 철도와 터널 경비에 우선을 두고 임무를 수행했다.
7월 20일 전주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7월 21일 남원에 집결한 전북도경과 전북 북부지역 경찰은 임실 방면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부대와 합동 방어태세를 갖추고, 남원시 운봉면에 진출한 함양경찰 병력과 합세하여 육십령 고개에 차단진지를 구축했다. 육십령의 전북·경남부대의 저지선은 1개 연대규모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무너져 일부는 안의로 후퇴하고, 일부는 산복에서 저항을 계속했다. 7월 30일 진주가 포위되어 경찰 1,000여 명과 군병력 1,000여 명은 7월 31일 의령으로 철수했다. 합천으로 집결한 충남·서울·전북의 경찰병력은 일부는 고령으로, 일부는 창녕으로 낙동강 동안으로 이동했으며, 의령의 경남·전남병력은 함안-마산으로 철수하여 낙동강 방어작전에 일역을 맡게 되었다. 고령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방어작전에 임하고 있던 남원경찰은 8월 4일 함안으로 후퇴하여 낙동강 방어작전에 참여했다.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작전이 개시되면서 경찰부대도 경찰지서 수복작전에 나섰다. 남원경찰은 10월 1일 남원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활동을 강화하며 잔적소탕작전을 전개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기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을 설정하여 전국적으로 공비섬멸을 하도록 했다. 이 경사는 제1-제3차 공비섬멸작전에 참가하여 공비섬멸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어서 이 경사는 서남지구 전투부대에 편성되어 공비토벌작전(제1기: 1951.12.1.-12.14, 제2기: 1951.12.16.-1952.1.4, 제3기: 1952.1.5.-1.31, 제4기 1952.2.4.-3.14)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이 작전 후 이 경사는 남원경찰서에 복귀하여 치안유지활동을 하던 중 8월 8일 남원읍 보절면에 공비들이 출몰한다는 정보에 따라 휘하의 병력과 함께 현장에 출동하여 곧바로 공비들과 전투가 벌어졌다. 이 경사는 공비들을 격멸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녕준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8-ㅌ-01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