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남희(이남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57382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남희 일병은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 발발 이후 유엔군이 북진하자 그는 조국통일의 선봉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0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포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하여 북진 중이었고, 사단은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후,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까지 진출한 상황이었다. 이 무렵 중공군은 이미 압록강을 도하하여 온정리와 운산에서 아군을 격파한 후 청천강까지 진출해 있었고, 여세를 몰아 중공군 제38군은 청천강 이북의 국군과 유엔군을 포위하려 했다. 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사단은 제2군단에 배속되었고, 3일부터 7일까지 군우리 북방의 비호산에서 중공군 제112사단과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 끝에 적을 격퇴하고 비호산을 지켜냈다. 이로써 사단은 청천강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했고, 중공군과의 대결에서 처음으로 승리함으로써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떨쳐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사단은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사단은 26일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 제38·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사단은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12월 3일 승호리 일대로, 6일 신계를 거쳐 시변리로 철수했고, 계속해서 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춘천 부근의 38도선 일대에 진지를 편성하고 방어준비에 매진했다. 그리고 12월 9일 제5포병대대가 예속 해제되고 제16포병대대가 사단에 예속되었는데, 이 일병은 제16포병대대로 전속되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신정 공세)를 시작했고, 사단은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사단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이 일병은 전방 연대에 대한 화력지원에 항상 앞장서 왔고, 중공군 제3차 공세 시에도 포열이 달 정도로 쉴 새 없이 포탄을 쏘다가 적의 포격에 1951년 1월 1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남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유해(54묘역-2판-3299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7-ㅊ-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