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남희(李南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5103491
  • 전몰일자 : 19500808

공훈사항

이남희 이병은 경상북도 안동군 율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7월 중순, 서울 용산의 제19연대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4월 19일에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어 교육훈련과 부대정비에 주력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이남희 이병이 소속된 제19연대의 주력은 원주에서 기차로 청량리를 거쳐 6월 26일 새벽 5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연대 장병들은 제7연대를 증원하여 춘천지역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사단 명에 의거 6월 27일에 홍천 방면의 제2연대를 증원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30일 오후에 홍천에서 원주로 철수했다.
이남희 이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7월 1일 야간에 이천지역으로 긴급히 투입되어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7월 4일에 안성을 거쳐 진천으로 철수하였고, 7월 9일에 수안보로 이동하여 사단에 합류했다. 이후 제6사단은 육본 명령에 의거 7월 12일 조령과 이화령을 포함한 문경지역 방어에 돌입하여 문경-점촌-함창 축선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을 맞아 지연전을 실시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7월 31일에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에 의거 8월 1일 새벽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북쪽 2km 지점인 양곡동 일대의 능선에 배치해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8월 6일에 용기동~양곡동을 잇는 능선 일대에서 방어하던 중에 적의 공격을 몇 번은 격퇴했으나, 결국은 역부족으로 선돌주막 남쪽의 236고지로 철수했다.
이남희 이병이 소속된 대대는 8월 8일 오전 11시경에 2개 대대 규모의 적이 선돌주막 부근까지 진출할 때에 강렬한 저항으로 격퇴하고, 즉각적인 역습으로 적을 선돌주막 북쪽으로 격퇴시켰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남희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39면-2159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ㅊ-09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