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남호(이남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0268
  • 전몰일자 : 19501116

공훈사항

이남호 일병은1931년 3월 1일에 경상북도 금릉군(現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451번지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고 있던 1950년 8월 하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3사단 제23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남호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1950년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연대는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9월 30일 강릉을 탈환했다. 연대는 10월 1일 양양군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남호 일병과 부대원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 시가지를 점령했다. 이 전투에서 이남호 일병은 부상을 입고 수도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남호 일병은 1개월여의 치료 끝에 회복되어 제2경비대대 창설요원으로 전속되었다. 육군본부는 후방지역에서의 공비토벌과 보급로 확보, 포로경비 등을 위해 1950년 11월부터 51년 4월까지 육본 직할로 14개 경비대대를 창설했는데, 제2경비대대는 1950년 11월 24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공비토벌작전을 하던 제5유격대를 개편하여 창설되었다. 제2경비대대는 육군 예비로서 경상남북도 일대에서 주보급로 경계와 게릴라 소탕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퇴로가 차단당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후방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던 지방 게릴라들과 합세하여 점차 전력을 재정비하고, 유엔군의 병참선을 차단하거나 전투근무지원시설들을 습격했다. 이들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38도선으로 내려오자 전선 타격부대와 배합전술을 펼치면서 유엔군의 후방을 더욱 적극적으로 교란했다. 이남호 일병은 1951년 1월 16일 강원도 인제 부근에서 수색작전을 하다가 적 게릴라와 조우하여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남호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24묘역-5판-836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4-ㅂ-00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