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남표(李南杓)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72476
  • 전몰일자 : 19511129

공훈사항

이남표 하사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후퇴할 당시, 1950년 11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565통신운용중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통신중대는 제5사단을 직접지원하고 있었다.
이남표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철수하여 방어 편성에 전념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중공군이 차단한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1951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통신중대는 제5사단을 후속하면서 사단과 군단, 그리고 육군본부와의 통신을 소통시키는데 전념했다.
이어서 제5사단은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했다. 이로써 사단은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의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 작전 시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와 서희령 점령을 위해 8월 31일부터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10월 14일까지 5,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북한군 3개 사단과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1,211고지를 적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냈으며, 현 진지를 10월 20일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했다.
이 전투에서 이남표 하사가 소속된 제565통신운용중대는 피지원부대인 제5사단의 통신망 확립을 위하여 전력을 다했다. 이남표 하사는 이곳에서 사단과 육본과의 통신선 연결을 위해 야지로 출동했다. 당시 아군 작전지역 후방에서는 적 게릴라가 활동하며 교란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는데, 그는 적의 기습공격을 받고 교전 중 중상을 입고 대구에 위치한 제27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 병원에서 정성스런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51년 11월 29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남표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6묘역-11판-1100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7-ㅅ-017)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