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남진(이남진)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29357
  • 전몰일자 : 19510718

공훈사항

이남진 하사는 1932년 9월 9일에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만리동(現 중구 중림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27일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공병대로 배치되었다.
이남진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1951년 1・4후퇴로 37도 선의 평택-안성선까지 물러난 국군과 유엔군이 전력을 회복 후 총반격을 개시하면서 서울재탈환 작전을 실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받고 후방을 차단당하여 적들에게 포위가 되었으나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북한군 제10사단 병력들이 제천-단양-안동까지 침투하자, 사단은 제천-영월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했다.
그 후 사단은 중공군 2월 공세를 받고 횡성 일대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적의 공격을 안흥 일대에서 저지해 냈으며, 3월 3일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태기산 전투(3월), 인제 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사단은 중공군의 4월 공세에 밀려 다시 소양강 남단으로 철수했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제12군 및 제27군 예하 3개 사단의 집중 포위공격 속에서도 사단은 중공군과 격전을 치르면서 5월 20일 홍천 부근 풍암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어서 사단은 5월 29일부터 군단 우익을 담당하여 현리 서북방 지역에서 캔자스선 진격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남진 하사가 소속된 제5사단은 중공군 제2군단을 추격하다가 5월 31일 대규모 적에게 포위를 당하여 분산되어 철수하여 소양강을 도하하였고 부대를 수습하여 현리 서측방 매봉재 일대를 점령하고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사단은 6월 4일을 기해 美 제10군단의 우측 전방 부대로서 원통 북방 서화리 일대의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연하는 新캔자스선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여 6월 17일까지 14일간의 격전 끝에 新캔자스선 점령에 성공하였으며, 7월 말까지 진지강화와 재편성에 주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남진 하사는 분대원을 지휘통제하며 新캔자스선에서 진지를 보강하다가 7월 18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남진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14면-859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ㅊ-04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