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남진(이남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0484
  • 전몰일자 : 19500930

공훈사항

이남진 일병은 경상남도 통영군 욕지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1950년 2월 초순 춘천에 위치한 제6사단 제7연대로 입대하였다. 당시 제7연대는 춘천에 연대본부를 두고 화천 축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남진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제7연대는 북한군 침략에 대비해 방어준비태세를 강화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곧바로 주방어진지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용감하게 싸워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27일까지 춘천을 방어했다. 이후 춘천에서 철수하여 원창고개에서 방어를 실시하다가 6월 30일에 원주를 거쳐 충주로 철수했다. 그리고 7월 14일부터 31일까지 이화령과 조령 등 문경 일대와 점촌–함창 축선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과 맞서 격전을 벌이며 진출을 지연시켰다.
제6사단은 상급부대 명에 의거 8월 3일에는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일대의 낙동강선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8월 말에는 신령 북방에서 북한군의 끈질긴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해 최후 발악적인 대규모 공세(일명 9월 공세)를 개시했다. 제6사단은 적의 대공세를 맞아 화산–725고지를 연하는 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9월 7일부터 포병 지원화력과 미 공군 전폭기에 의한 근접지원사격을 받아 공격했다. 사단 장병들은 9월 11일 대규모 공세를 격퇴하고,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이때 제7연대 장병들도 지금까지 방어하던 지역에서 반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9월 18일에 조림산 일대의 북한군을 포위 섬멸하고자 했으나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했다.
이남진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9월 19일에 사단의 주공으로서 조림산을 공격했고, 북한군은 퇴각하기 시작했다. 이후 북한군은 22일부터 전면적으로 퇴각하기 시작했고, 연대 장병들은 퇴각하는 북한군 제8사단을 추격하여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하였다. 그러나 이남진 일병은 이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부산에 위치한 제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던 중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남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7판-5면-08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23-ㄴ-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