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남진(李南珍)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914

공훈사항

이남진 순경은 1925년 4월 12일 전남 광주시 광산읍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화순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완도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4일 한강 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화순경찰은 화순-광주, 화순-나주, 화순-곡성을 잇는 주요 보급로 경비,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이 계속 남진함에 따라 7월 20일 전남도경은 보성으로 이동하였으며, 화순·영암·광산·나주·무안의 경찰병력은 속속 장흥에 집결하였다. 장흥에 집결한 경찰부대는 장흥을 중심으로 장흥-강진에 저지진지를 구축하여 목포 쪽으로부터의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보성에 전초진지를 설치하였다.
7월 25일 보성에 진입한 적이 휴식 중이라는 정보에 따라 7월 26일 미명을 기하여 구서칠 중화기부대와 화순·장흥·강진부대 등 250명은 3개 방면에서 적을 포위 기습하여 적 사살 30명, 생포 1명, 사이드카 2대, 따발총 2정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북한군 주력부대가 보성·목포·나주에서 장흥·강진으로 진격하자 장흥·강진에 있던 경찰은 7월 27일 완도로 후퇴했다. 8월 1일 전남경찰 총지휘권을 맡은 심재순 경감의 지시에 의거 완도에 집결하여 있던 전남 서남부지역 경찰병력은 완도지역에서 해상유격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강진·장흥·보성·화순부대가 9월 20일까지 유격전을 펼친 결과 적 175명 사살, 아군 86명 구출, 양민 330명을 구출하는 커다란 전과를 거두었다. 이 순경은 9월 14일 완도에 상륙기습을 시도한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남진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ㅁ-04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