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남준(이남준)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205404
  • 전몰일자 : 19511002

공훈사항

이남준 소위는 1930년 7월 7일 전라북도 군산시 개복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소위는 장교가 되고자 육군종합학교에 보병사관후보생으로 입교하여 소정의 교육을 받고, 1950년 10월 29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7사단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이 소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중공군의 제1차 공세로 평안북도 온정리와 운산에서 타격을 입고 진격이 잠시 주춤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평안남도 개천 일대까지 진출한 상황이었다. 사단은 11월 초순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치고 승리한 후,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공격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2차 공세에 밀려 순천-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때 사단은 영월 일대까지 철수했고,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맞아 1951년 2월 17~18일 치열한 전투 끝에 영월을 지켜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과 리퍼작전(3. 7.~3. 31.) 때 사단은 3월 12일 평창군 하진부리까지 진출했다. 사단은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 소양강 변의 정자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사단 장병들은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했으나, 이곳에서 더 이상 적의 돌파를 허용하지 않고 진지를 지켰다.
북한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사단은 8월과 9월 동안 양구 북쪽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 883고지, 892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격전 끝에 이들 고지를 확보했다.
사단은 미 제2사단의 단장의 능선 탈취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9월 24일 백석산 주봉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고지 탈취에 실패했다. 이 전투에서 이 소위는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 앞장서서 적 장애물지대를 개척하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0월 2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남준 소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18-ㅍ-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