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남주(李南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2477
  • 전몰일자 : 19510815

공훈사항

이남주 일병은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던 1950년 9월 하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9사단 제30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남주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진을 계속해 한・만 국경에 도달한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10월 24일과 11월 24일 두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제9사단은 10월 25일 서울에서 제28, 29, 30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창설되었다.
사단은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경북 김천지구 및 왜관지구에 투입되어 공비들을 소탕한 후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이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 시 사단은 1951년 1월 3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이다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어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3월 5일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4월에 접어들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고, 사단은 4월 25일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점령했다. 이남주 일병이 소속된 제30연대는 매봉-한석산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어서 중공군 5월 공세 때 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9사단은 5월 29일부로 美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하여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중공군 제165사단과 격전 끝에 고대산을 확보했다. 이어서 제9사단은 철의 삼각지대 확보에 중요한 감제지형인 철원군 김화읍 계웅산 전투에 투입되었고, 치열한 공방전 끝에 6월 28일 동 고지를 점령했다.
그 후 사단은 철원 서북방의 요충지인 화살머리고지(281고지)와 백마고지(395고지) 일대에 배치되기 전까지 철원 일대 집결지에서 부대정비에 전념했다. 이남주 일병은 집결지에서 부대정비 중 적 포탄에 맞아 8월 15일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남주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2판-7면-0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6-ㅅ-067)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전사자 명부의 소속이 제30사단은 당시 존재하지 않은 부대이므로 오기로 추정하여 제30연대로 조정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