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남재(李南宰)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8818176
  • 전몰일자 : 19530414

공훈사항

이남재 상병은 1922년 5월 27일에 전라북도 익산군 용안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시작되던 1951년 3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24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남재 상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인 4월 하순, 미 제24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양수리까지 철수했다가 다시 반격하여 가평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맞아 다시 가평 남쪽의 북한강 동쪽까지 철수했다. 이후 유엔군이 5월 24일부터 대대적인 반격작전을 개시할 때, 사단 장병들은 가평에서 시작하여 31일에는 화천호를 탈환하고, 군단의 예비가 되어 사창리 부근에 집결했다. 반면 군단은 계속 공격하여 6월 15일까지 적근산까지 진출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1952년 봄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간 미 제24사단은 1951년 10월 말에 미 제3사단으로부터 철원 북방의 방어진지를 인수하였다가 이듬해 4월에 미 제45사단에 인계하고, 사단은 미 제10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인제 북방 문등리 계곡으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전반적으로 1952년 8월까지는 유엔군이 공격적인 입장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9월이 되면서 중공군은 공세적인 활동을 강화했다. 이에 사단은 차후 공산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진지 강화와 수색 및 매복작전 활동을 강화했다. 그러던 중 이남재 상병은 10월 8일 미군 장병들과 함께 방어지역 내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고 소탕작전을 실시 중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53년 4월 14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남재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65203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1-ㅂ-01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