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남일(李南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305337
  • 전몰일자 : 19521014

공훈사항

이남일 일등중사는 1927년 7월 8일에 제주시 남군에서 출생하였다. 이 일등중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일등중사는 1950년 9월 1일에 입대 후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에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에 제9사단이 창설될 때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1연대 소속이었던 이 일등중사는 전후 행정처리 과정에서 소속이 제9사단 직할부대로 정리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과 그 북방의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일대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제9사단은 4월 5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철원 서북방의 요충지인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에서 중공군 제126사단과 대치하고 있었다.
유엔군과 북한군은 1951년 11월 27일에 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사단의 좌전방에 배치된 연대는 1952년 4월 19일에 사단 정면에 위치해 아군의 관측과 기동에 제한을 주던 300고지를 기습하여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고 적병 일부를 사살 후 철수했다. 이후 제9사단은 김화지구에서 전초 쟁탈전과 포로획득전,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제9사단은 1952년 6월 21일에 대규모의 포로획득과 더불어 북한군의 공격 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중공군 1개 연대 병력 3,500여 명이 방어하고 있던 사단 정면의 500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9월에 접어들어 휴전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고지 쟁탈전이 격화되었다. 제9사단은 1952년 10월 6일부터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 예하 제114·제112사단과 12차례의 백병전이 거듭되는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제9사단은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이 전투를 승리로 장식함으로써, 철의 삼각지 서남부에서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이 일등중사는 11차 공방전에서 소대원을 이끌고 끝까지 진지를 지켜내다 적탄에 맞아 1952년 10월 14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남일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ㅈ-05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