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남근(李南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6501487
  • 전몰일자 : 19500829

공훈사항

이남근 이등중사는 경상남도 울산군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8월 27일 제2사단에 입대하여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전에 위치하고 있던 제5연대(-)는 전투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소총탄 8~30발 정도만 휴대하고 의정부 북방의 축석령으로 투입되었다. 연대는 6월 26일 아침, 전날 송우리에서 국군 제3연대(-)를 격파한 제3사단과 제107전차연대를 맞아 분전했으나, 적 T-34 전차를 막을 수 있는 무기가 없었던 탓에 돌파당하고 말았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27일 창동 방어선에 투입되어 혈투를 벌였으나, 전투력의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 적 전차에 의해 또다시 돌파당할 수밖에 없었다. 연대 장병들은 분산 철수하여 28일 광나루에서 한강을 건넜다.
연대는 29일 밤 수원에서 긴급 재편성을 한 후,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 제2사단에 편성되어 30일 말죽거리 동쪽의 95고지 부근에 배치되었다. 제5연대는 북한군 제3사단 제8연대의 남진을 지연했고, 7월 1일 과천 일대로 철수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7월 3일 제2사단은 과천 지역을 제3사단에 인계했고, 연대는 안양 남쪽의 426고지에 배치되었다. 7월 4일 북한군 제4사단은 안양 읍내로 진출한 후 전차를 앞세우고 제5연대 진지에 공격을 가했다. 연대는 가용한 전 화기를 적 전차에 집중했으나, 적 전차는 손상 없이 연대 진지를 돌파하여 남진했고, 연대는 수원으로 철수했다.
미군의 투입으로 국군이 중동부전선을 담당하게 되자 제2사단은 7월 13일 문의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7월 16일 이후 제5연대는 보은군 회인 일대와 청주 일대에 배치되어 북한군 제2사단의 공격을 지연했으나, 전투력이 극히 저하되어 7월 25일 해체되어 제11연대에 편입되고 말았다.
제7사단은 8월 20일 제3·5·8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되었다. 민부대에서 제5연대로 개편된 연대는 8월 20일부로 제6사단에 배속되어 군위군 부계 일대의 대율동, 492고지, 527고지 등에서 적과 공방전을 벌이며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일련의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용감히 싸우다, 8월 29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남근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려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6781 육)을 추서하고, 유해(31묘역-판2441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8-ㅇ-08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