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난수(李蘭秀)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320072
  • 전몰일자 : 19510628

공훈사항

이난수 일등중사는 1925년 12월 26일 경기도 수원시 세류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3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난수 일등중사는 전선에 투입되어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였다. 이 일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작전에 기여하고 9월 말 38도선에 도달하였다. 이후 10월 9일에는 38도선을 돌파해 19일 평양에 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 일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10월 23~24일 안주 일대에서 청천강을 도하한 후 25일 운산에 도착하였다.
이후 이난수 일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한 후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여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이어 4월 21일에는 임진강 북쪽의 대덕산-백학산-강정리를 연하는 선에서 정찰활동에 주력하면서 오금리-마지리 간 주저항선의 방어진지도 강화하였다. 다음날인 4월 22일 중공 제64군은 일부 병력으로 임진강 북쪽에 진출한 연대의 퇴로를 차단한 후 포위 공격을 기도하였으나 장병들의 투혼에 밀려나고 말았다.
이난수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캔자스선 상의 영평을 확보할 목적으로 문산 축선에 투입되었다. 연대는 고봉산 부근에서 경미하게 저항하는 적을 격퇴하고 일산을 경유 금촌으로 진출하였으며 21일 새벽 3시경 1개 대대 규모의 적이 법원리 남쪽 외화산에서 선제기습 공격을 해왔다. 그와 연대병력은 새벽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펼쳐 적을 격퇴하였다.
이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6월에 들어 임진강 북쪽에서 강력한 정찰 활동을 하며 전곡-연천 도로로 북서쪽의 임진강을 따라 김화를 공격하였다. 공격 제대가 공격을 개시하자 적의 저항도 완강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상 악화로 공격은 초반부터 부진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솔선수범하며 전투에 임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을 방어하던 이난수 일등중사는 1951년 6월 28일 율곡리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난수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3-ㄹ-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