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낙성(李洛成)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89844
  • 전몰일자 : 19520617

공훈사항

이낙성 하사는 1929년 9월 21일에 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 문제로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1월 31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낙성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3월 초순, 1952년 1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전기전술을 숙달하는 교육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부근의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 일부를 인수하여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그리고 사단은 3월 29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백 전투사령부로 배속이 변경되었다. 백 전투사령부는 4월 5일부로 국군 제2군단으로 개칭되었다.
제2연대는 봉화산-442고지 일대의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주간에는 수색정찰, 야간에는 매복작전에 집중했다. 이후 쌍방 간에 큰 전투는 없이 소강상태가 계속되었으나, 수색부대를 운용하여 적정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상급부대에서 포로교환 문제로 교착된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방어진지 전방에 대해 공세적인 작전을 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이에 이낙성 하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6월 11일부터 15일까지 방어진지 전방의 무명고지(금성천 동북방 A, B고지)를 공격했다. 그러나 적의 강력한 저항으로 무명고지를 탈취하는 데 실패하고, 전진기지인 575고지로 복귀하여 진지를 강화했다. 그는 6월 15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6월 17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낙성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5-ㅋ-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