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낙붕(李樂鵬)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03778
  • 전몰일자 : 19530726

공훈사항

이낙붕 이등중사는 1930년 1월 8일에 경상남도 부산시 서구 대신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3월 27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11사단 직할부대인 수색대에 배치되었다.
이낙붕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5월 하순, 제11사단은 강릉-양양 방향으로 반격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6월 10일에 건봉산-향로봉을 잇는 선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 장병들은 방어선을 점령하고 방어진지 보강에 노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얼마 후 제9연대는 11월 17일부로 수도사단으로부터 월비산(459고지)와 351고지를 포함한 동해안 작전지역을 인수했으나, 바로 그 다음날인 11월 18일부터 북한군의 공격으로 다시 빼앗겼다. 이후 11월 24일까지 뺏고 빼앗기는 고지쟁탈전을 실시했으나, 결국은 적에게 빼앗겼다. 제9연대 방향에서 월비산은 방어하기에 매우 어려운 지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다시 계속되었고, 이는 1953년 6월까지 이어졌다.
제11사단은 6월 10일에 작전지역을 제21사단에 인계하고, 화천 일대로 이동하여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당시 중공군들은 휴전협정 타결이 임박한 상황에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7월 13일 야간에 중동부전선의 금성돌출부를 탈취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제2군단 예하 사단들은 주파령-적근산을 연하는 선으로 철수했으나, 다시 7월 15일에 반격하여 7월 19일까지 602고지와 금성천 만곡부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낙붕 이등중사가 지휘하는 수색소대는 602고지를 공격할 때 적 진지 후방으로 침투하여 적 포병 진지를 습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7월 19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여 성공적인 임무를 수행했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7월 26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낙붕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46233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06묘역-9판-280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4-ㅁ-06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