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호(李吉鎬)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757005
  • 전몰일자 : 19520929

공훈사항

이길호 상병은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5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만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이길호 상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전선 상황은 중공군의 제6차 공세가 시작되자 설악산 부근의 사단 주저항선이 돌파되면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 상병과 사단 병력은 1951년 6월 3일부터 12일까지 향로봉지구 전투를 실시하여 940고지를 점령하였다. 이어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북한군 제19사단으로부터 월비산을 탈취하는 전과를 거두고, 11월 26일 여수로 이동하여 호남지구에서 공비소탕 작전을 전개하였다.
1952년 초반까지 쌍방 간에 합의되었던 임시휴전선이 백지화됨에 따라 회담의 추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당시 수도사단은 후방지역 공비들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여 후방치안의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게 됨에 따라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1952년 2월부터 백아산, 모후산, 조계산 지구에 대한 소탕 작전과 반복 수색을 전개하였다.
이길호 상병과 장병들은 1952년 7월 8일 지형능선을 공격해 점령했으나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전선은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었으며 그 뒤 8월 중순에 접어들어 다시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9월 6일 북한군은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해 왔다. 이에 이 상병을 비롯한 장병들은 사력을 다해 분전했으나 수도고지는 함락되었다.
9월 9일 고지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이 상병과 장병들은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였고 고지를 향해 돌진해 고지를 점령하였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은 계속되었고 그러던 중 이길호 상병은 1952년 9월 29일 수도고지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호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7판-2면-21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6-ㅌ-07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