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하(李吉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00393
  • 전몰일자 : 19500921

공훈사항

이길하 일병은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 발악적인 공세를 격퇴하던 시기인 1950년 8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길하 일병은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8월 말까지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큰 수훈을 세웠다.
가산을 점령한 북한군 제13사단과 제1사단이 다부동 남쪽 도로룰 차단하고 대구산 도로를 감제하는 570고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산 및 570고지 일대에는 유엔 전폭기가 수시로 출격하여 폭격하였으므로 북한군은 적극적인 공세 행동을 하지 못하였다. 9월 4일 북한군 제3사단이 부대 간격을 따라 왜관-다부동 도로 남쪽 464고지로 침투하고 있었으며, 좌측방 왜관도 무인지경이 되고 우측방 에서는 북한군 제13사단이 다부동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가산으로 진출하려던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북한군 제1사단 1개 대대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철수하고 말았다.
이어 9월 10일 북한군 제1사단이 가산 일대에서 공격을 재개하여 일부 병력을 도덕산(660m) 일대로 남진시키고 일부 병력을 팔공산 일대로 진출시키고 있었다. 이길하 일병과 연대병력은 9월 14일에는 대구 북쪽의 약 10km 지점에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가산 일대의 정해진 목표를 향해 수차례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그가 방어 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수차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이 일병과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그는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길하 일병은 1950년 9월 21일 보은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7판-1면-48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1-ㅁ-09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