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하(이길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505803
  • 전몰일자 : 19500720

공훈사항

이길하 일병은 경상남도 동래군 성장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광복 후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9년 2월 27일 제3여단 제5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사단 병기중대로 전속되었다. 이 일병은 1950년 3월 27일까지 향로봉, 밀양, 양산, 언양, 울산 일대의 공비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사단은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제22연대와 제23연대의 대전차포중대 및 2개의 중화기중대를 서울로 출동시키고, 제23연대만을 가지고 전투에 대비하게 되었다. 6월 27일 북한군이 강릉을 점령하고 제8사단이 제천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자, 동해안 축선은 제3사단의 전투정면이 되었고, 사단은 29일 출동하여 울진 남쪽의 왕피천에 도착했다.
사단은 7월 1일 새벽에 울진 시가지를 공격, 경미한 적의 저항을 물리치고 이를 탈환한 후 동해 가도 상의 138고지와 남대천 및 왕피천 일대에 부대를 배치했다. 북한군 제766부대는 주력을 동해 가도로 기동시키고, 일부 병력을 산간지역으로 우회시켜 사단을 협공했다. 사단 장병들은 138고지에서 왕피천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분전하였으나, 압도적으로 우세한 북한군의 공격에 밀려 7월 2일 영해 방면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사단은 7월 3일부터 10일까지 영해와 평해 일대에서 적 유격대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7월 13일 영해 북방의 고지군을 점령한 사단은 영덕까지 지연전을 실시하였으나, 19일 적 제5사단의 기습적인 배후 공격으로 영덕을 탈취당하고, 영덕 동남쪽(1km)의 181고지~207고지 능선으로 철수하여 급편방어에 들어갔다. 이 일병은 병기병으로서 사단의 병기 정비에 앞장서다 7월 18일 영덕에서 적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7월 20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9판-6면-11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2-ㅍ-03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