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우(李吉雨)

  • 군별 : 경찰
  • 계급 : 총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020

공훈사항

이길우 총경은 1915년 10월 20일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철도경찰 소속으로 재직 중 대전에서 전사했다.
1949년 4월 22일 내무부 치안국은 치안국 직속으로 철도경찰본대를 두고 용산, 청량리, 인천, 개성, 대전, 곡성, 광주, 목포, 순천, 대구, 안동, 부산에 지방철도경찰대를 설치하여 운영했다. 철도경찰에게 부여된 주 임무는 철도역과 교량·연선(沿線)·터널 등 철도시설의 경계였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철도경찰대 본대는 모든 지방철도경찰대에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명령했다. 대전 철도경찰은 대전역 일대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며 대전-청주, 대전-논산, 대전-옥천을 잇는 철도 경로 상의 교량·연선(沿線)·터널 등 철도시설의 경계에 임했다.
7월 3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북경찰국은 비상경비총사령부 지시에 따라 각 서(署)의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충남지구의 지연전에 참가하도록 조치했고, 잔여 경찰병력으로 전투부대를 편성하여 북한군의 남진에 대비했다.
대전 지역 철도경찰은 7월 12일 대전역을 장악하려는 북한군과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대전에서 후퇴하여 김천을 거쳐 8월 4일 대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대전 철도경찰은 대구 지역 일대의 철도역과 교량·연선(沿線)·터널 등 철도시설을 경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각 도(道) 경찰도 경찰관서 수복작전에 나섰다. 대전경찰은 10월 3일 대전경찰서를 수복했으며, 대전 철도경찰은 대전경찰서가 수복되자 대전역을 중심으로 한 철도역과 교량·연선(沿線)·터널 등 철도시설의 보수와 경계에 임했다. 10월 20일 40여 명의 공비들이 대전경찰서, 대전역, 관공서를 대상으로 공격을 하였다. 이 총경은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대전역에서 적 5명을 사살하고 계속전투를 치르던 중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우 총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경찰1묘역-504판-12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3-ㅂ-01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