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우(이길우)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0003
  • 전몰일자 : 19510425

공훈사항

이길우 중위는 1924년 8월 6일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50년 6월 중순에 국가의 간성이 되기 위한 큰 뜻을 품고 동래의 육군보병학교로 입교하였다. 그는 단기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50년 8월 30일 육군 소위로 임관되어 제1사단 제15연대 수색대 소대장으로 보직되었다.
이길우 중위는 전선에 부임할 무렵인 1950년 10월 하순 사단은 운산 주변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중공군과의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청천강 남쪽의 신안주 부근에서 재정비를 완료한 이 중위와 연대병력은 11월 24일 북한군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은 그들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하여 교량을 파괴시켰고, 또 도로상에는 도처에 120mm 박격포탄으로 만든 부비트랩을 매설하였다. 사단 공병이 이를 제거하는데 다소 시간이 지연되었으나 북한군의 저항이 경미하여 저녁 무렵에는 태천을 남쪽과 동쪽에서 포위하게 되었다.
이길우 중위의 지휘하에 연대병력은 12월 7일 사리원에서 남천으로 이동하여 구월산 일대에서 패잔병을 소탕하였다. 이후 위천리, 구화리 일대의 축차적인 지연 진지를 점령하여 아군의 철수를 엄호하면서 지역내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철수가 완료되자 14일에는 고량포-적성 일대에 배치되어 주저항선을 편성하였다. 이로써 6개월 만에 전쟁 개시 이전의 진지를 다시 점령하게 되었다.
이후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시작되면서 이길우 중위와 연대병력은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한 후 1월 31일부터 미 전차의 지원하에 2개 대대 병진대형으로 안양 남쪽의 수리산-모락산을 공격하여 개시 5일 만에 치열한 백병전을 치른 끝에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3월 15일 제6중대의 도하를 시작으로 각 대대의 일부 병력만 도하시켜 적정을 탐지하도록 한 다음, 16일 한강을 도하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 전역을 장악하였다.
이 중위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장병들에게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소대장이었다. 전투 경험이 없는 장병들을 지휘해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길우 중위는 1951년 4월 25일 경기도 파주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우 중위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충무무공훈장(훈기번호 4739 육, 외 1건)을 추서하고 유해(장병1묘역-210판-394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ㅂ-09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