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우(李吉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1047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길우 일병은 1929년 8월 2일 경상북도 경주군 내동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8월 2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익힌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길우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당시 연대는 임진강-토산-신계-수안-상원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병력은 1950년 10월 19일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그가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기습공격이 시작되어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였다. 10월 24일 박천-운산 도로와 태천-영변 도로의 교차지점인 용산동 남쪽 1km 지점에서 북한군은 전차로 증강된 대대 규모의 병력을 배치하여 완강히 저항하고 있었다.
이길우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25일 아침 운산 공격을 개시하였다. 크리스마스 공세를 시작한 지 닷새째인 11월 28일 연대는 태천 외곽까지 진출하였으나 중공군의 공격에 밀려 박천 북쪽의 중막동-용산동 선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박천-용산동 일대를 고수하기 위하여 총력을 다 하였으나 계속적으로 증원부대를 투입하는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연대는 축차적인 지연전을 펼치면서 박천 남쪽의 동이동으로 철수하였다. 이 일병은 연대병력과 함께 12월 7일 사리원에서 남천으로 이동하여 구월산 일대에서 활동 중인 1개 대대 규모의 패잔병을 소탕하였으며 이후에도 위천리, 구화리 일대의 축차적인 지연 진지를 점령하여 아군의 철수를 엄호하면서 지역내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철수가 완료되자 14일에는 고랑포-적성 일대에 배치되어 주저항선을 편성하였다. 이어 연대는 방어진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지뢰와 철조망을 가설하는 동안 수색대를 강북으로 파견하여 적정을 탐지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38도선을 지켜내려 하였다. 그러나 1950년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는 중과부적이었다. 죽는 순간까지도 손에서 총을 놓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길우 일병은 1951년 1월 1일 적성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우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4423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3-ㄲ-00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