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연(李吉淵)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806470
  • 전몰일자 : 19500704

공훈사항

이길연 일병은 강원도 원주군 지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6월 7일 홍천지역의 38도선 방어를 맡고 있던 제6사단 제8연대에 입대했다. 1949년 말부터 북한의 남침징후가 높아짐에 따라 육군본부는 경계강화 지시를 거듭 하달했고, 제6사단도 지속해서 경계를 강화했다. 이 일병은 유사시 조국을 반드시 수호하겠다는 의지와 사명감으로 경계임무에 적극 임했다.
제8연대는 6·25전쟁 발발 불과 5일 전인 1950년 6월 20일 제2연대에 38도선 경계진지를 인계하고 서울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되었고, 이동한 지 이틀 만에 전쟁을 맞았다. 전쟁이 발발할 때 이 일병이 소속된 제8연대 제3대대는 전 장병이 휴가 중이었다. 전쟁 소식을 들은 장병들은 속속 원대 복귀했고, 대대는 27일 김포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어 김포지역 전투에 투입되었다.
6월 27일 대대는 운유산 동측방 고지에 배치되었다. 28일 8시경 운유산 지역으로 북한군 제6사단 제13연대의 주력이 포병화력 지원하에 전차를 앞세우고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대대는 전 화력을 집중하며 적의 공격을 저지하려 했으나 전투력의 열세를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대대는 김포사의 철수 지시에 따라 28일 11시경에 철수를 개시하여 김포읍-김포비행장-영등포를 경유하여 시흥에 집결했다.
28일부터 대대는 수도경비사령부로 원대 복귀하여 한강방어선의 영등포 일대에 배치되었다. 적 제4사단은 29일부터 수차례 여의도를 거쳐 한강을 건너 대대 진지를 공격했으나, 대대 장병들은 방어와 역습을 반복하며 이를 물리쳤다. 그러나 7월 3일 반파된 한강철교를 이용하여 적 전차가 남하하여 노량진을 거쳐 영등포 시내로 진입하고, 오류동 일대의 적도 영등포 시내로 진입하게 됨에 따라, 대대는 진지 전방과 후방에서 동시에 적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에 대대는 상급부대 명령에 따라 시흥으로 철수했다. 한강방어선 전투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과 맞서 용감하게 싸우다 7월 4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0판-8면-06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8-ㅈ-014)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