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수(李吉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201079
  • 전몰일자 : 19500815

공훈사항

이길수 일등중사는 1930년 2월 1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광복 후 나라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7년 5월 28일 제2여단 제2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가 1949년 5월경 국방부 근무지원단으로 전속되었다.
한편 국방부는 1945년 11월 13일 서울특별시 용산에서 국방에 관련된 군정 및 군령과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국방사령부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1946년 3월 29일 군정법령 제64호에 의거 국방부로 변경되어,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함께 정부조직법에 의거하여 국방부가 설치되었다.
건군 당시에 美 군정은 국방사령부 하에 경무국과 군무국을 두었다. 그 때문에 국방사령부는 경찰과 군대를 모두 총괄하는 조직이었다. 현재로 치면 행정안전부와 국방부가 합쳐진 기관이었다. 소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하여 美 군정은 정식 군대가 아닌 경찰예비대로 부대를 편성했고,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인 조선경비대나 대한민국 해군의 전신인 조선해안경비대나 초반에는 경찰예비대로 치안부대를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국방부란 명칭도 1946년 3월에 도입했지만 소련의 반발 때문에 국내경비부로 명칭을 바꿨고 내부적으론 통위부(統衛部, Department of Internal Security)라고 불렀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방부로 바뀐 이후 해당 명칭을 계속 유지 중이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남진하자 국군과 유엔군은 지연전을 실시하여 1950년 8월부터는 낙동강방어선에서 적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국방부도 6월 27일 충청남도 대전으로 이전했고 7월 16일에는 경상북도 대구로 이동하여 8월 18일까지 대구에서 임시 수도의 정부기관으로서 역할에 주력했다.
이길수 일등중사는 국방부 정비수송대에 배치되어 육군 병참단 예하 제1자동차대대와 긴밀한 협조로 각 부대에 보급지원 및 병력수송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1950년 8월 15일 육군본부로 신병 수송을 위하여 병력수송 차량 정비 상태를 점검 중 북한군 침투부대의 기습으로 교전하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수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530 국)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8판-3면-08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1-ㄲ-018)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