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수(李吉秀)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위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126

공훈사항

이길수 경위는 1926년 3월 3일 강원도 정선군 동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강원도경 춘천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평창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경위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북한군 제2사단은 6월 25일 오전 중에 춘천을 점령한 다음 홍천을 공격한 북한군 제7사단과 함께 양평을 거쳐 수원 선으로 우회하여 후방으로부터의 아군 지원 병력을 차단하고자 했다.
적은 6월 26일 병력을 증원하여 소양강 건너편의 우두평야로 몰려들었다. 이에 국군 제7연대장이 통합지휘를 한 군경부대는 이들 적에게 상당한 타격을 가하여 소양강 도하를 저지했다. 3일 동안 춘천을 지켜냈던 춘천서 병력은 후퇴와 동시 전투경찰 제2대대에 편입되어 홍천-횡성-원주-음성-문경-상주-군위를 거쳐 8월 초 영천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춘천경찰은 군위-영천, 대구-영천, 영천-포항을 잇는 주요 보급로 통제, 오열 색출, 철도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북한군의 퇴각과 함께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춘천경찰은 10월 10일 춘천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잔적소탕작전과 치안유지활동을 전개했다.
그 후 1951년 제3차 중공군의 참전으로 1월 4일 서울이 다시 함락되면서 아군 군경부대는 후퇴를 거듭했다. 그러던 중 1월 25일 국군·유엔군의 재반격이 개시되자 각 도(道) 경찰도 이에 가담했다. 춘천경찰은 영월에서 치안유지활동을 수행하다가 1월 26일 평창 방면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이날 춘천경찰은 평창군 장암산 일대에 잔적이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소탕작전을 펼쳤다. 이 경위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잔적을 소탕하다가 적의 집중사격을 받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수 경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ㄲ-01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