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성(李吉成)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8513
  • 전몰일자 : 19510307

공훈사항

이길성 일병은 전라북도 전주시 화산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0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10월 8일 38도선을 돌파한 후,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으로 진격했다. 사단은 11월 초순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쳤다. 사단은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25일 중공군 제2차 공세와 부딪혔고, 중공군 제42군단의 측후방 공격에 악전고투하며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미 제8군은 12월 1일부로 전면 철수할 것을 명령했고, 사단은 12월 3일부터 성천-강동-승호리-신계-시변리- 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신정 공세)를 시작했고, 사단은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사단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하고, 제2군단이 경북 안동까지 종심 깊게 침투함에 따라 사단은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사단은 1월 19일 공격을 개시하여 24일 영월을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중공군은 2월 11일 횡성-원주 축선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개시했고, 횡성 동북방 일대에 배치되었던 사단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되면서 평창 일대까지 밀려났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사단은 17~18일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연대는 2월 21일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 3월 6일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의 리퍼작전(3. 7.~3. 31.) 때 사단은 평창군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적정탐지를 위해 적진에 투입되었다가 적의 습격을 받아 3월 7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성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0판-8면-26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ㅎ-01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