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봉(李吉奉)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15

공훈사항

이길봉 순경은 1929년 3월 20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전주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완주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전주경찰은 주요 시설 경비와 완주-곡성, 완주-논산, 완주-금산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자 국군은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7월 3일까지 한강방어선에서 적의 남진을 지연하고자 했으나 실패했고, 북한군은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파죽지세로 남진했다.
전북경찰국은 비상경비총사령부 지시에 따라 각 서(署)에서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충남지구의 지연전에 참가하도록 조치했고, 잔여 경찰병력으로 전투부대를 편성하여 북한군의 남진에 대비했다.
이 순경은 7월 4일부터 충남경찰을 지원하는 병력에 편성되어 신탄진에서 군의 주보급로를 경비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북한군의 남진이 계속되자 7월 8일 완주로 후퇴했다. 이곳에서 이 순경은 7월 10일부터 완주 철도경비에 투입되었다. 7월 15일 북한군 제3사단의 예하부대로 추정되는 부대의 병력이 곡성역과 곡성의 경찰지서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이 순경은 동료 경찰관들과 함께 적을 격퇴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더 이상 적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봉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7-ㅅ-00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