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만(이길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2975
  • 전몰일자 : 19500821

공훈사항

이길만 일병은 1932년 1월 11일에 충청북도 청주시 남주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8년 7월에 육군 제1훈련학교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본부로 배치되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에 기습남침하자, 국군은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철수하여 지연전을 수행했다.
미 제1기병사단은 피아가 구분이 안되는 철수하는 상황에서 한국인 안내자 및 통역자가 필요했고, 이길만 일병은 통역병으로 미 제1기병사단에 전속되었다. 이때는 정식으로 카투사(KATUSA) 제도가 생기기 전이었다. 당시 미 제1기병사단은 7월 18일에 포항으로 상륙하여 영동으로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사단은 대전전투를 치루고 철수하는 미 제24사단을 엄호하고,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했다.
제일 먼저 영동에 도착한 제8기병연대는 7월 22일부터 25일까지 옥천-영동 축선과 무주-영동 축선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고, 영동-황강 도로 축선에서는 도로 북쪽에는 제7기병연대 제2대대와 제8기병연대 제2대대가, 도로 남쪽에는 제5기병연대가 배치되어 적 진출을 지연시켰다. 사단은 7월 29일부터 김천에 사단지휘소를 설치했으나, 7월 31일부터 철수하여 8월 3일에 낙동강 남안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북쪽 왜관에서 남쪽 현풍으로 제5, 8, 7기병연대 순으로 배치하였다. 그리고 철교와 인도교를 폭파하여 대구로 향하는 1번 국도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었다.
북한군 제10사단 주력이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현풍 서북쪽 용포로 도하하려 했으나, 미 제7기병연대에 의해 격퇴되었다. 성주 방면의 북한군 제3사단 예하 제7연대는 8월 9일 새벽 3시에 왜관 남쪽 미 제5연대 정면에서 도하하여 금무봉(268고지)을 점령했으나, 10일에 사단 예비인 제7기병연대의 반격으로 재탈환했다.
북한군 제3사단 1개 연대는 제105전차사단의 지원을 받아 8월 14일에 국군 제1사단 제15연대 정면으로 공격하였고, 이어 8월 15일에 미 제1기병사단과의 전투지경선 사이로 공격하여 왜관 동북쪽 303고지를 점령했다. 이 고지는 왜관 일대의 철도, 도로를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감제고지였다. 미 제5기병연대 1, 2대대는 8월 16일에 반격을 개시하여 17일에 303고지를 다시 탈환했다. 이후 계속되는 북한군의 공격을 맞아 치열한 혈투 끝에 303고지를 지켰다. 이길만 일병은 주로 미 제5기병연대에 파견되어 통역 및 안내자 임무를 수행하다가 8월 21일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만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0판-4면-07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7-ㅈ-05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