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남(李吉男)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21091
  • 전몰일자 : 19510606

공훈사항

이길남 하사는 1928년 11월 23일에 경상남도 울산광역시 울산에서 출생하였다. 이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하사는 1950년 9월 4일에 입대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전입되었다가 육군의 부대조정에 의거해 제9사단 제2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를 담당하였다. 12월 19일부로 제9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였다.
이후 북한군 유격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당시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 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하여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한 뒤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37도선 일대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9사단은 강원 정선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후 제9사단은 1951년 3월 5일에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월 12일부터 18일까지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고 제9사단은 4월 중순 하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후 제9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1951년 5월 7일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그 결과로 연대는 인제 남방의 598고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이 무렵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 징후가 포착되어 사단은 방어 태세로 전환했다. 중공군은 1951년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고,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하사는 적탄에 맞아 1951년 6월 6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남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8-ㅅ-05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