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길권(李吉權)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61850
  • 전몰일자 : 19500917

공훈사항

이길권 이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던 1950년 8월 초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길권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5일, 제6사단 장병들은 신령 북방의 370고지 일대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인 8월 중순에는 위천 북쪽 1∼3㎞ 지점에서 국통산∼청노동을 연결하는 연결하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곳은 적의 주요 접근로로 예상되는 의성∼우보∼신녕 축선의 방어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이었다. 사단 장병들은 8월 12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계속된 대규모 공격을 격퇴했다. 그리고 8월 18일 새벽 3시 무렵 적의 공격을 받고 13시간 동안 치열한 격전 끝에 진지에서 철수했으나, 주간에 역습으로 전환하여 밤 8시에는 방어선을 회복했다. 이후 8월 26일까지 국통산을 포함한 중요지형 쟁탈전이 연일 계속되어 공세적인 방어로 지켰으나, 8월 28일에는 더는 지킬 수가 없어 신녕 방면으로 철수하여 370고지에 배치되었다.
이곳에서 제2연대는 9월 1일에 적 1개 대대 규모가 공격하는 것을 맞아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그러나 적들은 9월 2일 야간에 대규모 공세(일명 북한군의 9월 공세)를 시작했고, 9월 5일은 북한군의 격렬한 공격으로 영천까지 피탈되는 최대 위기의 순간이었으나 9월 8일까지 방어진지를 사수함으로써 극복했다. 이길권 이병은 9월 5일에 부대로 전입했는데, 당시 적들은 대규모 공격에서 실패하고 간헐적인 공격을 하다가 9월 10일에 다시 대규모 공격을 했으나, 연대 장병들은 9월 13일까지 끈질긴 방어로 격퇴했다. 이후 적들은 공격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제6사단은 9월 16일 아침부터 유엔사 작전지침에 의거 반격을 개시했다. 이길권 이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10시간에 걸친 치열한 교전 끝에 오후 5시 반에 정면의 349고지와 332고지를 탈환했고, 북한군은 조림산 방향으로 퇴각했다. 그리고 9월 17일에도 아침부터 조림산 공격했고, 적들은 의외로 완강히 저항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길권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39면-2157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ㅋ-05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