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환(이기환)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104306
  • 전몰일자 : 19501021

공훈사항

이기환 하사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 등을 고려하여 작성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10월 18일,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가 1950년 4월 19일에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될 때, 그는 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홍천 축선을 담당하고 있던 제2연대를 직접지원했다.
제6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신속히 전방방어진지에 배치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춘천과 홍천 북방에서 북한군 공격을 3일간이나 지연하고, 6월 29일에 횡성-원주로 철수했다. 이후 7월 한 달 동안 충주-문경-함창 축선에 지연전을 수행하고,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연하는 능선의 낙동강 선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북한군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이기환 하사 소속된 공병중대는 주로 장애물 개척 및 설치 임무를 수행하고, 때로는 직전적인 전투로 적을 공격하기도 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전 전선에서 반격을 개시했다. 당시 제6사단은 정면의 조림산에서 북한군을 섬멸한 후 추격하기로 했다. 당시 북한군은 조림산 일대에서 강력히 저항하다가 9월 22일 야간에 퇴각했다. 이때부터 제6사단은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했다. 9월 23일부터 함창-충주-원주-춘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4일에 춘천을 탈환했다. 이어 사단은 10월 5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하여 공격했다. 이때부터 북한군들은 강하게 저항했으나, 제6사단은 이를 격파하며 진격하여 10월 8일에 화천을 점령했고, 10일에 김화-금성에 도착했고, 13일에 신고산-덕원에 도착했다. 10월 14일 오전 7시에 덕원을 출발하여 마식령을 넘어 10월 16일에는 북한군의 저항을 격파하면서 양덕에 도착했다.
이기환 하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2연대의 선두에서 적이 설치한 장매물을 개척하며 공격을 선도했다. 이에 힘입어 제2연대는 10월 20일에 성천(평양 동북방 45km)을 점령하고, 21일에 희천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당시 공병중대는 추후 공격에 대비하여 공격 통로에 적이 설치한 지뢰지대를 개척하던 중 적 부대로부터 습격을 받고 즉각 대응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4면-8585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5-ㅍ-06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