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환(李基煥)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위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109

공훈사항

이기환 경위는 1920년 1월 4일 제주도 제주시 삼양동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제주도 북군 조천읍에서 전사했다.
한라산 근거지에서 비밀리에 조직을 구성하고 전투준비를 하고 있던 공비들은 1948년 10월 1일 소련 혁명 기념일을 기하여 다시 대규모 시위를 하며 도순·오동리 경찰지서를 습격했다. 또한 제주도 전역에서 습격, 약탈, 살상 등 만행이 자행되어 하루 동안에 55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10월 8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10월 11일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설치했다.
공비들이 제주읍을 기습공격하기 위해 10km 지점에 위치한 고성에 집결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제주도경비사령부는 10월 30일 군병력과 합동으로 작전을 실시하여 공비 200여 명을 생포했다. 11월 7일에는 제주도 적화를 위해 음모하는 것을 사전에 발견하여 제주도 남로당 지하조직을 일망타진했다.
제주도 내의 약 300명으로 추정되는 공비들은 육군 제2연대의 토벌작전이 전개되고 있는 중에도 파괴활동을 계속했다. 공비들은 군경의 무기를 탈취하여 마을을 습격하는가 하면 청년들을 한라산의 비밀 아지트로 끌고 가서 훈련을 시킨 다음 공비로 양성했다.
육군본부는 초목이 무성한 녹음기가 되면 한라산지구의 공비토벌작전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하고 해빙과 동시에 공비들을 격멸하기 위해 1949년 3월 2일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했다. 전투사령관은 효과적인 작전수행과 민·관·군 협조체제를 위해 민보단 1개 소대(25명)와 군인 1개 분대, 경찰 1개 분대로 구성된 민·관·군 혼성부대 수개 조를 편성했다. 민보단 소대는 도내 초·중학교 교사, 군청 직원, 청년단 간부들을 대상으로 1개월에 걸쳐 기초 군사훈련을 실시한 후 필요할 때마다 소집하여 소탕작전에 참여시켰다.
한편, 해병대는 일부 병력을 제주도에 파견하여 제주도 군·경·민 합동전투지휘소를 설치하고 공비토벌작전에 돌입했다. 제주경찰은 1950년 2월부터 6월까지 해병대와 함께 공비토벌작전을 펼쳤다. 이 기간 중 중문리 881고지 중턱에 위치한 공비들의 야전병원을 급습하였으며, 수많은 공비들을 사살함으로써 공비들의 활동이 잠잠해졌다.
11월 9일 공비들이 북군 조천읍에 내려와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군경부대가 출동하였는데 이때 이 경위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공비 3명을 사살하는 공을 세웠으며, 계속해서 공비들을 소탕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환 경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경찰2묘역-513판-299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00-ㅌ-04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