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홍(李基洪)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11501
  • 전몰일자 : 19510513

공훈사항

이기홍 하사는 제주도 제주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하순경 제3사단 제23연대에 입대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포항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격전 중인 상황이었다. 사단은 포항과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연대는 북진하여 30일 강릉을 탈환하고,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진격하여 10월 10일 원산 시가지를 점령했다. 연대는 11월 11일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2사단의 집중공격에 진지가 돌파당하면서 1951년 1월 2일 군단 작전명령에 따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제7사단에 배속되어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을 물리치고 영월을 탈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연대는 2월의 킬러작전, 3월의 리퍼작전 때 강원 횡성, 인제의 봉화산, 하진부리 일대에서 격전을 치렀고, 3월 28일까지 38도선 상의 현리-하서림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4월 초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인제군 한계리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가리봉, 한석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 방어선인 가리봉을 지켜냈다. 이후 연대는 공격을 계속하여 현리 북방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 진격전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5월 13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홍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7-ㅈ-00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