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호(李基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200284
  • 전몰일자 : 19510615

공훈사항

이기호 하사는 1927년 12월 27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8년 6월 2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기호 하사는 38선 진격전에 투입되어 10월 9일 유엔군과 함께 38도선을 돌파하였다. 조국 통일의 꿈을 안고 임진강-토산-신계-수안-상원 방향으로 진격을 계속하였다. 그가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기습공격이 시작되어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였다.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2월 7일 사리원에서 남천으로 이동하여 구월산 일대에서 패잔병을 소탕하였다. 이후 위천리, 구화리 일대의 축차적인 지연 진지를 점령하여 아군의 철수를 엄호하면서 지역내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철수가 완료되자 14일에는 고량포-적성 일대에 배치되어 주저항선을 편성하였다. 부대 장병들은 방어진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지뢰와 철조망을 가설하는 동안 수색대를 강북으로 파견하여 적정을 탐지하는데 주력하였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는 중과부적이었다. 그가 소속된 연대는 서울을 포기하고 평택까지 철수하였다.
이기호 하사가 소속된 사단은 1951년 1월 말 유엔군과 함께 반격을 시작하였다. 수원과 관악산을 거쳐 2월 10일 한강 남쪽에 도달하였고, 16일에는 한강 남쪽으로 진출한 이후 한 달여 동안 서울을 목전에 두고 염창-김포 일대에 배치되어 경계와 잔적 소탕작전을 병행하고 있었다. 3월 15일에는 한강을 도하 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을 탈환하는 수훈을 세웠으며, 4월에는 다시 임진강까지 진출하였다. 이어 4월 21일 임진강 북쪽의 대덕산-백학산-강정리를 연하는 선에서 정찰 활동에 주력하면서 오금리-마지리 간 주저항선의 방어진지도 강화하였다.
6월에 접어들어 쌍방은 다시 형성된 38도선 부근의 새로운 전선(임진강구-연천-문산-율곡리)에서 상호 대치하게 되었으며, 전투는 소강상태를 유지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기호 하사는 1951년 6월 15일 금파리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호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7596 국)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3-ㅁ-08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