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호(이기호)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500397
  • 전몰일자 : 19510306

공훈사항

이기호 하사는 1932년 10월 4일 경상남도 창녕군 외곡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9일 밀양군 삼랑진에 있는 제6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병기중대에 배치되었다. 제7사단은 8월 20일 제3·5·8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제7사단은 낙동강방어선의 영천전투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사단은 이 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을 격멸함으로써 조국의 위기를 구해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사단은 9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사단은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로 집결 후, 다음 날 개천 동쪽의 비호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11월 초순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을 격퇴했다. 사단은 11월 22일 묘향산을 공격했으나, 중공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사단은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사단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제3군단은 제3사단 제2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하여 영월을 탈환하도록 했다. 사단은 1월 19일부터 공격을 개시하여 24일 영월을 탈환했다. 중공군은 2월 11일 횡성-원주 축선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개시했고, 횡성 동북방에 배치되었던 사단은 주진지가 돌파되면서 평창 일대까지 밀려났다.
사단은 2월 21일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 3월 6일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이 공격전에서 이 하사는 병기 정비를 위해 동분서주하다 3월 6일 적의 습격을 받고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호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14면-858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8-ㅁ-00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