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호(이기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805359
  • 전몰일자 : 19501210

공훈사항

이기호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군번과 전사 일자 등을 고려할 때, 그는 1950년 초에 옹진반도에서 주둔하고 있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어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병력의 열세와 지형의 불리한 조건에서도 용감하게 싸웠으나 26일 아침에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대전의 육본경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스미스특수임무부대가 투입될 때 갈곶리 전투에 참가하고, 이후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보은-상주 일대에서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안동에서 전투를 치룬 후 육군 예비가 되었다가 8월 중순에 포항지구전투사령부 소속으로서 낙동강방어선의 기계-안강지역에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3일까지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적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했다.
이기호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영광스럽게도 육군 중에서 유일하게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발되어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그리고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9월 18일에 인천으로 상륙한 후에 영등포 남쪽으로 기동하여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했다. 이후 유엔군의 주력이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감행할 때, 연대는 서울에 남아 주요시설에 대한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국군 제2사단이 11월 7일에 재창설될 때, 제17연대는 사단의 예하 부대로 편성되었다. 당시 북한군 패잔병들은 포천-철원-평강 일대에서 후방 교란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제2사단은 포천-평강 일대에서 유엔군의 후방을 교란하던 북한군 잔적소탕을 위해 투입되어 많은 전과를 올렸다.
한편 국군과 유엔군 주력은 11월 하순에 압록강까지 북진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큰 피해를 보고 다시 38도선 일대로 철수했다. 이때 제2사단은 12월 8일부로 38도선 상인 양문리-탑두울 지역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기호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장차 예상되는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준비를 철저히 했다. 그러던 중 연대는 12월 10일에 방어준비 중 적 침투조의 습격을 받았으나 반격으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안타깝게도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1면-07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ㄷ-04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